오늘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이 된 날입니다. 내란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혁명이 실패하면 구족을 멸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책임의 문제까지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일상의 경험 속에서 사회 질서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한 매체에서 ‘50대 전임교수인데 월급이 200만 원대, 빚 걱정하고 삽니다’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비정년트랙 교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대학에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년트랙 교수와, 아예 정년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는 비정년트랙 교수가 있습니다. 2024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두 집단의 평균 임금은 약 세 배 가까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같은 전임교원임에도 이토록 큰 차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비정년트랙 교원이 법적·제도적 보호 없이 구조적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고착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내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서의 배제, 권한의 박탈 등 차별이 지위 전반에 걸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처우 개선’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차별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대학이 설계한 구조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문학·예술·역사 등 교양교육의 축소, 학벌 중심의 임용, 고등교육 철학의 부재가 서로 얽히면서 비정년트랙 교원은 대학의 빈틈을 메우는 ‘가성비 좋은 인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평등과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야 할 대학이 정작 스스로 만든 위계에는 가장 무심한 공간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은 차별받는 스승을 보며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교육이 사회의 부당함을 성찰하게 하는 기능을 잃을 때, 대학은 더 이상 민주적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공간이 됩니다.
최근 비정년트랙 교원들이 제기한 임금차별 소송 비용이 시민과 교수, 은퇴자, 타 대학 교원들에 의해 후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대학 울타리를 넘어서 공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사회적 요구로 확장되고 있는 이 문제는 누군가의 생계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교육 환경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