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확신이 때때로 우리에게서 겸손과 공감, 통찰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이야기를 지난 6월 초 레터에서 나눴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지난 주 잇츠시네마 <콘클라베>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Our faith is a living thing precisely because it walks hand-in-hand with doubt. 우리의 신앙은 의심과 함께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의 믿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철학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확신’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의견을 밀어내고, 자신의 판단을 정답이라 믿고 살고 있는지, 그리고 정답만 고집하다가 정작 과정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시간은 때로 말 없는 깨달음을, 때로는 방향을 바꾸는 용기를 안겨줍니다.
'마치 한 세트처럼 따라붙는 '태도'와 '관계'와 '집단'은 그대로 한 사람의 인격을 설명하는 서사이면서 한 사람의 품격을 되비추는 이미지가 된다. 때로는 단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 하나가 백 마디 말을 대신할 수도 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무리를 이뤄왔는지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