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결국, 늙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에서는 ‘납골당 메이트’라는 문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마치 룸메이트를 구하듯 함께 묻힐 사람, 즉 ‘하카토모(墓友, 무덤 친구)’를 구한다고 합니다. 무덤 친구를 찾은 후에는 함께 묻힐 사람끼리 미리 친해지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집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묘지는 가족묘인데 반드시 가족끼리 함께 묻혀야 할 이유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기도 하고 자녀가 없거나 독신이라면 가족묘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이는 삶의 마지막까지 ‘혼자가 아닌’ 상태로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동안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초고령화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사회를 돌아보면, 여전히 노년의 삶은 가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강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식과 따로 살고, 일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가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빈자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년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이미 작은 실험들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네 경로당이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모임들이 서로의 병원 갈 길을 챙기고 반찬을 나누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공유주거 형태로 노년의 집을 설계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함께 늙어가기 위한 건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관계를 갈망합니다. 대화가 오가는 자리, 작은 도움을 나눌 수 있는 손길,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는 우리에게 “나는 누구와 함께 늙어갈 것인가?” “내 곁에 남을 공동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관계를 맺고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홀로의 과정이 아니라, ‘함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면 합니다.
사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모양이 변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아크』 10호 ‘전환’에 실린 「일생에 단 한 번쯤 사랑하세요. 뜨겁게, 애틋하게」(장현정)를 소개합니다. 글을 쓴 호밀밭출판사 장현정 대표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고 어떻게 변해야 할지, 무엇을 꿈꿔야 할지 생각해 보니 ‘사랑’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