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흥행으로 영화 OST는 미국과 영국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습니다. 영화 속 배경인 서울 남산타워와 성곽길 등을 무대로 한 ‘케데헌 투어’는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고 전통문화 캐릭터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몰리며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판매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평일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전통 민화 캐릭터 굿즈를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한다고 하니 박물관 앞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줄은 K-컬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동안 서양의 문화에 비해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 외면해왔던 한국적인 문화가 이제는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게 입증된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어제는 상지인문학아카데미 ‘미학으로 그림 읽기’ 수강생들과 범어사 성보박물관에서 도슨트 현장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전시 중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大慈大悲>와 <인내로 열린 길, 감인대도> 관람 후 박물관 도슨트의 역할과 업무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어떤 전시든, 그 안에 담긴 기획 의도가 충분히 전달될 때 관람객들의 감동은 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범어사 독성전 대문 문양에서 발견한 그림을 ‘선남선녀’ 굿즈로 탄생시켰습니다. 이 굿즈는 모든 이들에게 부귀와 영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씩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선남’과 ‘선녀’, 이렇게 한 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범어사뿐 아니라 박물관 곳곳에서는 ‘堪忍待(감인대)’라는 글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범어사 동산 스님께서 이 글을 즐겨 쓰셨다고 합니다. 堪忍待(감인대)는 ‘견디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시절인연이 온다’는 뜻입니다.
견딜 감, 참을 인, 기다릴 대, 이 세 글자는 무조건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화를 참지 못하면 자신이 흔들리고, 의심을 참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삶이 무너지기에 치솟는 감정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마음, 그리고 내 안에서 작용하는 수많은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때에 맞는 인연이 생긴다고 합니다. 어쩌면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것도 시절인연이 닿아서인지 모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없어도 그 명맥을 이어온 수많은 예술인들과 연구자들께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우리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우리’가 있습니다. ‘I(나)’가 아니라 ‘We(우리)’ 안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I(나)’. 그 안에서 찾아낸 절대적인 ‘공동선’을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박물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마음을 끌어당기는 유물 앞에 가만히 서서 그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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