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늘 막을 올립니다. 많은 이들은 영화제를 해운대의 화려한 레드카펫과 대규모 상영관으로 기억하지만, 그 시작은 남포동이었습니다. 좁은 골목 사이로 포스터가 붙고, 작은 극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서던 풍경은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합니다. 원도심의 쇠락과 더불어 부산국제영화제가 해운대로 중심을 옮긴 뒤, 남포동에서 영화의 활기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남포동은 여전히 영화의 뿌리를 잊지 않은 채 ‘커뮤니티 비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상영회를 열고, 토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부대행사가 아니라, 영화제가 어떻게 도시와 시민에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상지인문학아카데미는 2022년부터 ‘커뮤니티 비프’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잇츠시네마’를 남포동 BNK 아트시네마 모퉁이 극장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일 년 내내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과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커뮤니티 비프’의 정미 프로그래머와 함께 영화를 선정하고 진행자를 섭외해서 상지인문학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눕니다. 영화제 기간에 잇츠시네마는 커뮤니티 비프 행사와 함께합니다. 이번 잇츠시네마는 내일, 18일 오후 6시 30분 부산극장에서 열립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를 보고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습니다. 매달 잇츠시네마를 진행할 때마다 영화에 맞는 간식을 준비하는데 내일은 특별히 덕화명란에서 준비해주십니다. 덕화명란은 부산의 기업으로 사회적, 환경적 가치뿐 아니라 인문‧예술 분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덕화명란과 상지인문학아카데미는 앞으로도 다양한 인문활동을 함께해갈 예정입니다.
영화는 스크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앉아 웃고 울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리에 영화의 진짜 힘이 있습니다. 화려한 축제의 조명 아래 빛나는 별들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동네 골목에서 이어지는 작은 상영의 불빛 또한 소중합니다. 남포동의 커뮤니티 비프는 영화제가 단순히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의 삶과 호흡을 나누는 문화적 공동체임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함과 더불어, 그 초창기의 열정과 시민적 에너지를 기억하며 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전환은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차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긴 패배와 짧은 승리'일지 몰라도, 결국 큰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말과도 통한다. "작은 파문밖에 일으키지 못할지라도, 대안을 상상하고 실천하려는 결심의 한 단면"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일상은 지루하고 단순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는 변화의 낌새를 잉태한 거대한 전환이 복류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