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신문 <가디언>에서 “한국은 교육 수준과 디지털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고도화된 사회이지만, 젠더 평등 면에서는 여전히 큰 격차와 갈등이 존재한다”며 이 갈등이 단지 남성과 여성의 대립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 경제 불안, 정체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 갈등의 뿌리는 단순히 성별의 대립에 있지 않습니다. 사회 구조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싶어 합니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 주거 불안, 결혼과 출산의 부담은 젠더의 이름으로 분노를 재조직합니다. ‘남자라서 불리하다’, ‘여자라서 차별받는다’는 말은 모두 현실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감정의 다른 표현입니다. 불평등한 경제구조 속에서 서로를 경쟁자로 느끼고, 타인을 향해 분노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구조의 문제를 ‘상대의 문제’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함께 바꿔야 할 세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로 나누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를 인격으로 바라보는 만남이지만,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상대가 대상이 됩니다. 지금의 온라인 세계는 안타깝게도 ‘그것’의 관계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나’와 ‘너’를 바라보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인간관계의 기술입니다. 연결의 시대에 진짜로 필요한 것은, 연결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기술이 불러온 전환을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변화의 속도를 점진적으로 조율하고, 문명의 이기利器가 갖는 장점을 취하면서도, 그 혜택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절제의 지혜를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기술에는 도덕을 판단할 눈이 없고 가슴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과 기술의 대칭점에 있는 '서사와 상징' 그리고 '사랑으로 무장한' 사람과 문화적 낭만주의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