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에는 잇츠시네마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상영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의 뜻은 ‘관심 구역’인데 실제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그 주변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군사적‧행정적 명칭으로 감시, 통제, 폭력이 집약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전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는 달리 유대인 학살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독일 장교 가족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아우슈비츠의 비참함은 담장 너머 들려오는 소리가 대신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소리는 공포스런 상상으로 이어져 불편해졌습니다. 아마, 집에서 OTT 영상으로 봤다면 빨리 돌리던지, 그냥 꺼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그 불편함을 견디게 했습니다.
버튼 하나로 문이 열리고 대화마저도 ‘읽음’ 표시로 즉시 확인되는 시대입니다. 편리함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느려도 답답해하고, 조금만 다르면 불편해합니다. 기다리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생각과 마주하는 대신 화면을 넘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불편함은 언제나 사유의 시작이었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철학의 시작은 놀라움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의 당혹감입니다. 이 놀라움은 감탄이 아니라 ‘세계가 왜 이런가’,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맞는가’라는 근원적인 불편함과 의문의 감정에 가깝습니다. 무엇인가 어긋났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불편함을 견딜 때, 우리는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며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가끔은 모든 것이 거슬리고, 세상이 나에게 너무 맞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땐 억지로 위로하려 하지 말고, 그 불편함 속에 잠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건 나쁜 감정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