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최근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잇따라 통폐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영문학, 철학, 고전학 전공의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학과 이름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학생 수 감소와 취업률 부진을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는 것이지요. 한 미국 언론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인문학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Just not monetizable).”
이 소식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비슷한 장면을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목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국내 대학들 역시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을 이유로 학과 통폐합을 진행해 왔고, 그 과정에서 인문학은 늘 먼저 검토 대상이 되었습니다. “취업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문장은 한국과 미국을 가리지 않고 거의 같은 어조로 반복됩니다.
이쯤 되면, 인문학은 정말 쓸모없는 학문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여전히 인문학 수업을 대학 교육의 핵심으로 선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버드, 예일, 시카고대 같은 학교들은 교양 교육의 중심에 글쓰기, 역사, 철학을 놓고 있습니다. 기업과 공공기관이 요구하는 역량으로도 비판적 사고, 맥락 이해, 서사 능력을 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학과는 줄어들고 있는 이 모순을 단순히 “인문학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인문학의 가치가 아니라, 대학을 평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학생 수, 등록금 수입, 취업 통계로 학과의 존립을 판단하는 구조 속에서 인문학은 언제나 설명이 길어지는 분야가 됩니다. 인문학적 성과는 즉각적인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필요하다는 말과 불필요하다는 결정 사이에서 늘 밀려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로 말입니다. 대학이 오로지 직업 훈련소라면, 인문학은 분명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대학이 사회의 방향 감각을 기르는 공간이라면, 인문학은 가장 중요하게 기초로 삼아야 할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대학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사회가 질문하는 능력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판단은 늘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판단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래 묻고, 오래 생각해 온 시간의 축적 위에서야 비로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