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꽁꽁 얼었던 땅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설날이 다가오니 날씨마저 조금씩 분주해지는 것 같습니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명절 연휴 동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친척들이 다 모여 떠들썩한 명절은 아니라 해도 주위 사람들을 챙겨보는 연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아크 편집위원인 정훈 작가의 ‘도시 산책, 호기심과 쓸쓸함이 녹아든 사람의 이미지’를 보냅니다. 원도심을 걷다 마주한 역사의 파편들과 사람들의 시선을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도시 산책, 호기심과 쓸쓸함이 녹아든 사람의 이미지
정훈(문학평론가)
길을 걷습니다. 약속도 목적도 없이 길을 따라 걷습니다. 아침이나 저녁, 혹은 하릴없는 대낮에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상점과 가게가 즐비한 도심의 골목을 걷습니다. 어느 가게에는 새롭게 출시한 상품과 음식이 부끄러운 듯 자랑스러운 듯 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청춘남녀가 손을 잡고 어디론가 총총 사라집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힘겹게 작은 골목에서 주춤거립니다. 사람들 시선은 주로 앞을 향하지만 대개 좌우 양옆이나 어쩌다가 뒤를 향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3년 전에도, 아니 30년이나 100년 전에도 골목과 간선대로 가장자리를 활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집중과 분산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계산과 예측의 흐름 위에 걸쳐져 있습니다. 소외와 물신화에 대한 경계나 비판은 거리의 산책자에겐 허공을 맴도는 티끌처럼 먼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럴 때면 의미도 없이 시간을 타고 넘어가는 미약한 존재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19세기 세계의 도시 파리에서 생겨난 개념인 플레뇌르(flaneur)는 호기심과 초연함이 서린 거리의 산책자였습니다. 이들은 새롭게 생겨난 산업사회의 다양한 풍경과 근대의 부정적인 도시 및 자본주의 이미지의 환영 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들의 눈을 통해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병폐를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한 시인이 보들레르입니다.
보들레르의 시가 당시 파리의 이미지를 끔찍한 수법으로 묘사했다고 말했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역사를 과거의 이미지가 현재 특정한 순간과 만나서 성좌처럼 구성되는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말로써 설명합니다. 지나간 시간이 순차적으로 쌓여 서술된 역사의 눈으로 보면 도시의 산책자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 그러니까 역사의 페이지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쓸쓸한 과객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는 원도심 거리를 걸으면, 언젠가 지난 계절처럼 바닥에 우두커니 서거나 앉아 시선을 던졌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귓바퀴를 잡고 흔듭니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이렇게라도 걸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몸짓을 취하는 것이겠지요. 바람이 불면 떠나는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떠밀었던 숱한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걸음을 재촉하나 봅니다. 그렇게 이 겨울도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