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무크지 『아크』가 ‘2026 우수콘텐츠잡지’에 선정됐습니다. 우수콘텐츠잡지 선정 사업은 국내 잡지 가운데 콘텐츠의 공공성과 전문성, 편집 완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수한 잡지를 선정하는 제도입니다. 선정된 잡지는 전국 공공도서관과 군‧경 시설, 해외 한국문화원 등에 보급됩니다. 『아크』는 인문적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담론을 축적해오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 있습니다. 아크 구독 회원으로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크가 인문 네트워크의 플랫폼 역할을 넓혀 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잘 다져가겠습니다.
3월입니다. 좋은 소식과 함께 살포시 봄이 오나 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오늘의 레터는 정훈 작가의 ‘가만히 지켜보는 일’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는 일
정 훈(문학평론가)
봄비가 종일 내리는 연휴, 이 3월의 첫날을 열어젖혔던 비는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의 그늘과 때를 씻기는 입김처럼 마냥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말도, 의미 없이 내뿜는 한숨이나 하품처럼 이 세계와 우리 삶의 진실을 짚는 표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거나, 3월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기분과 느낌은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발견은 아닙니다. 어쩌면 날씨와 기온 변화에 따른 감각 작용으로 생기는 마음이 바람 따라 정처 없이 흐르는 중에 잡아내는 ‘덧없는 인식’에 불과할 따름이 아닐까요. 마음이나 기분은 전염성이 강해서 새롭게 접어든 한 해와 봄의 태동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나 각종 매체에 왠지 덩달아 춤을 추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해마다 그래왔다는 자각을 불러오지요.
한편으로 변화와 속도에 민감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기제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능력은 곧 시대가 요구하는 사고와 감각을 얼마나 잡아채느냐에 달려있다는 ‘신화’가 형성된 지 오래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과 의식은 경쟁과 물질적 이해득실에 기반을 둔 현대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기후 위기와 생태계 교란 등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전 지구적 병폐가 생겨납니다. 전쟁도 예외가 아닙니다. 무왕불복(無往不復)입니다. 즉 한 번 간 것은 반드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란 없습니다.
소월은 시 「개여울」에서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라 읊었습니다. 잊어도 상관없는 게 있는가 하면,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언젠가는 새로운 얼굴로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란하게 경거망동하는 마음의 형식에 애착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면서, 현실의 진상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로써 다시 소생하는 봄과 함께 흘러가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봄이 와서 만물이 돋아나는 게 아니라 생성의 바퀴는 실은 언제든 멈추지 않았다는 진실을 알 수 있을 테지요. 또다시 봄이 온 게 아니라, 생성하지만 고요한 마음자리에 소식 하나 들앉습니다.
<오늘의 아크 읽어보기 11호_6>
절대적인 생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고 계속된다. 그렇기에 사라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미완을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이어 받아 완수하고 그다음도 거듭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미래의 시간, 다음의 세상을 살아갈 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생각의 맥이 닿는 순간부터, 우리에겐 어떤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까?